외로운 PM/PO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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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PM/PO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습니다.

외로운 PM/PO들에게는 '더 큰 네트워크'가 아니라 '친구들'이 필요합니다.
외로운 PM/PO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습니다.
Photo by Alvan Nee / Unsplash
🙇🏻
2022년 5월 3일 업데이트: 개인 사정으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은 잠시 멈추었습니다. 나중에 재개하게 되면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외로워요

Shreyas Doshi 선생님이 말했듯 프로덕트 매니저는 외로운 직업입니다. 엔지니어들은 대체로 팀으로 뭉쳐서 일하고, 디자이너들은 좋은 커뮤니티들을 갖고 있지만 프로덕트 매니저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외로운 프로덕트 매니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 공감과 지지와 격려를 주고 받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서 배움을 얻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꺼내자면 저는 이런 환경에서 일할 때 특히 외로웠습니다.

  • 인게이지먼트와 리텐션 지표는 처참하게 무너져 있는데 푸시 메시지를 보내서 단순 접속자 수 지표만 늘리던 회사. 단순 접속자 수 지표가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며 타운홀 미팅에서 자랑스럽게 발표하는데, 전 직원이 박수 치며 축하하던 곳.
  • 대표가 '이런 기능을 만들어라' 지시하면 그에 따라 화면 기획서를 그리기만 하는 사람들이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잡타이틀을 달고 있는 회사.
  • 사용자와의 대화는 CS 팀에게 떠넘기고, 프로덕트 팀은 사용자 인터뷰를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회사.
  • Cross-functional 협업은커녕 PM이 매번 개발팀에 애걸복걸해서 '개발 리소스를 따 내는' 식으로 일해야 하는 회사.
  • 엔지니어가 없어서 제가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던 회사. '시니어라면 환경 탓 하지 말고 혼자서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대표로부터 들었던 곳.

요약하면 제가 추구하는 바(사용자와 고객에게 진짜로 가치를 주는 프로덕트를 만들기, 권한을 가진 자율적인 프로덕트 팀이 cross-functional하게 협업하기, 좋은 가설을 수립하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하기 등)를 주위의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더 나아가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말로는 가설 검증, 데이터 중심, 고객 가치를 외치지만 실제로 이를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 곳에서는 더 큰 좌절을 느꼈습니다.  

이런 척박한 환경은 아니더라도, 프로덕트 매니저들에게는 다들 각자의 어려움 또는 괴로움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프로덕트 매니저 동료 그룹(peer group)이 잘 갖춰진 경우를 제외하면,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외롭기도 할 거구요.

이미지 출처: https://productlife.to/p/-pms-need-friends

그래서 어쩌면 프로덕트 매니저들에게는 다른 서비스의 UI 플로우를 분석하고, 기업 전략을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이해, 공감, 지지, 격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다시 말해 프로덕트 매니저들이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링크의 글을 읽고는 그 생각에 조금 더 확신을 더하게 되었구요.  

⭕️ PMs Need Friends
Why PMs are lonely and how we can build genuine PM friendships to improve our lives.
외로운 PM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네트워크(bigger network)'가 아니라 '다른 PM들과의 진짜 친구 관계(real friendship)'이라고 말하는 글.

그래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일단 이런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분들을 모으고, 만나서 얘기를 듣는 것부터 하려고 하구요. 그 전에, 제가 생각하는 커뮤니티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어떤 분들과 함께하고 싶은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은 심하게 까다롭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보다 '뜻이 맞는' 사람이 모이는 것이 저에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러 까다롭게 적어 보았습니다.

세 가지 정체성: 가깝고 깊은 관계 / 지식 대신 Vulnerability / 작고 안전한 공간

1) '느슨한 연결의 힘'보다는 '가깝고 깊은 관계'

'느슨한 연결의 힘'이라는 말이 있죠. 가까이 알고 지낸 사람들보다는 느슨하게 알고 지낸 지인들로부터 더 많은 기회(특히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프로페셔널 커뮤니티들은 이런 느슨한 연결의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고 있습니다.

이런 느슨한 연결도 물론 필요하지만... (이미지 출처)

하지만 느슨한 연결만으로는 외로움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느슨한 연결 관계에서는 조금 더 가면을 겹겹이 쓰게 되고, 마음 속에 있는 얘기보다는 표면적인 얘기들을 주로 하게 됩니다. 수백 명이 모인 파티 자리에서 심각한 얘기를 하기란 어려운 법이니까요.

저는 마음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곳, 내 마음을 이해 받을 수 있는 곳, 그래서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커뮤니티의 첫 번째 정체성은 '가깝고 깊은 관계'입니다. 부담스럽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 놓고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커뮤니티 하나쯤은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2) 지식이 아니라, Vulnerability를 중심으로 교류하는 커뮤니티

이 커뮤니티는 지식을 중심으로 교류하는 스터디 모임이 아닙니다. 강의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성공적인 프로덕트의 UX를 분석하지도 않을 것이고, 책이나 자료를 읽고 토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마음이 맞는 멤버 분들끼리 자체적으로 스터디 모임을 하시는 것은 환영합니다.)

그럼 뭘로 교류하느냐 하면... Vulnerability를 중심으로 교류할 겁니다. Vulnerability는 (사전을 찾아 보면 '취약성'이라고 나오지만)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어렵고 뉘앙스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개념인데요, 핵심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self-disclosure)'입니다.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내 생각과 감정(두려움, 불안, 기쁨 등을 포함해서)을 솔직히 드러내고,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하는 거죠.

Vulnerability의 반대는 가십(gossip)입니다. 내 얘기를 하는 대신, 남의 얘기를 하는 거죠. '업계의 누구는 어쨌다더라', '저 회사는 어떻다더라' 하는 식으로 나와 별 상관 없는 얘기를 입에 올리는 거죠. 이런 가십은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고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관계를 돈독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관계는 각자가 마음의 부담을 무릅쓰고 자기 자신을 드러낼 때, 그리고 그런 용기를 서로 지지해 줄 때 돈독해집니다.  

이 커뮤니티는 '가깝고 깊은 관계'를 추구하기 때문에, 가십이 아니라 Vulnerability가 환영 받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는 낯간지럽거나 부담스럽다고 말할지 몰라도, 멤버들끼리는 속 깊은 얘기들을 터 놓고 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표방하고 싶습니다.

물론 빙 둘러 앉아서 각자 자기 고민을 얘기하면 옆에서 박수쳐 주고 끝나는 모임을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고민을 솔직하게 나누고, 도움을 구하고,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충분히 동료 학습이 이뤄질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학습이 이뤄지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도록, 멤버 분들께 도움도 많이 청하려고 합니다. (먼저 손을 들고 도움을 주시면 더 좋구요!)

3) 작고 안전한 공간 (=적은 인원, 닫힌 커뮤니티)

가깝고 깊은 관계와 Vulnerability를 추구하려면 자연스럽게 작고 안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가깝고 깊은 관계를 맺으려면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원이 적어야 합니다. Vulnerable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도 인원이 적어야 합니다. 정서적 개방성이 웬만큼 높은 사람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 앞에서 Vulnerable해지면서 안전하다고 느끼기는 어려우니까요.  

아직 구체적인 정책을 정하진 않았지만, 개별 모임 참가자 수가 6명을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전체 커뮤니티 인원을 6명만 모집하면 분명히 발생할 중도 이탈에 대응하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커뮤니티 인원은 20명 정도 모집하되, 4~5명 단위의 챕터로 모임을 운영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저 말고도 소매를 걷고 커뮤니티를 운영해 주실 분들이 더 있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어떻게든 되겠죠.)

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열린 커뮤니티가 아닌, 닫힌 커뮤니티가 됩니다. 희망하는 분들을 전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초반에는 페이스북 등의 경로로 이 계획에 관심을 표현하신 분들께 제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려서 대화를 나눠 보고, 그중 뜻이 잘 맞는 분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멤버를 모집할 생각입니다. 영리 목적의 활동은 아니지만, 일종의 창업이라고 생각하고 신중하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커뮤니티의 정체성만큼, 참여하는 멤버의 정체성도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1) PM/PO로서 임팩트를 만든 경험이 있는 분

누구 한 명이 다른 멤버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주는 커뮤니티는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고, 그래서 계속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PM/PO로서 임팩트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잘나가는 회사(흔히 말하는 네카라쿠배당토 같은 빅네임 기업)에서 일하는 것과 임팩트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래 셋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면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임팩트를 만든 경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Measure Impact'에서 차용했습니다.)

  1. 사용자에게 가치를 주고 회사 성과에 도움이 되는 프로덕트를 만든 경험
  2. 회사 혹은 프로덕트의 전략적 방향성을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경험
  3. 프로덕트 팀이 일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친 경험

'PM/PO 경력 몇 년 이상' 같은 조건은 달지 않겠습니다. 경력이 짧다고 임팩트를 못 만드는 것도 아니고, 경력이 길다고 임팩트를 만드는 것도 아니니까요.  

2)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충분한 시간/노력을 들일 준비가 된 분

깊은 관계를 형성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임에 참여하고, 자신의 고민과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다른 멤버들의 고민을 듣고, 자기 생각을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 받는 게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들일 준비가 된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아직 커뮤니티 운영 계획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프라인 모임, 온라인 모임, 슬랙 대화 참여 등을 통틀어서 1주일에 3시간 정도는 쓰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자기 얘기도 잘하고, 남의 얘기도 잘 듣는 분들

'자기 얘기를 잘한다'라는 말이 '자기 얘기만 주구장창 한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거 아시죠? 가끔씩 자기 얘기만 몇십 분이고 하는 분들을 목격하곤 합니다. 다른 멤버들의 모임 참여 의욕을 꺾는 이런 분들은 극구 사양합니다.

자기 얘기를 잘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Vulnerability를 갖고 자기를 드러낼 줄 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 불편함을 무릅쓰고 자기 생각,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분, 남의 얘기와 가십만 찾는 게 아니라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남의 얘기를 잘 듣는다'가 무엇인지 짧게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면, 이런 특성들이 있을 겁니다.

  • 내가 상대를 잘 안다고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 상대가 처한 상황, 상대가 가진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상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질문한다.
  • 대화 상대에게 주의를 집중한다. 스마트폰은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치워 둔다.
  • 상대가 원치 않는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않는다.

관심 있는 분, 알려주세요?

여기까지 읽고 대부분 흥미를 잃으셨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관심 있는 분들은 저에게 알려주세요.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 주셔도 좋고, 이 글을 공유한 페이스북 링크에 댓글을 달아 주셔도 좋습니다. 제가 차근차근 연락 드려 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